이해영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장난기 많고 활발한 이해영에게 교회는 꾸중과 강요의 공간에 가까웠지만 주찬양을 비롯한 다른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만큼은 한없이 즐거웠습니다. 함께 어울리기를 몇 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며 이해영은 비로소 교회에 발길을 끊을 수 있게 되었고 같은 학교도 아닐 뿐더러 마땅한 연락처조차 없던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됩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건 중학교에서. 그러나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던 이해영이 먼저 주찬양을 모르는 체하고, 주찬양 역시 이해영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점심시간마다 이어지던 반 대항 농구 경기 속에서 이해영은 우연히 농구를 하는 주찬양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릴 적 기억과는 다르게 코트 위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주찬양은 이해영에게 낯설 만큼 인상적으로 다가왔고, 그 일을 계기로 이해영은 점점 주찬양을 의식하게 됩니다. 복도나 급식실에서 주찬양의 얼굴이 보일 때마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습관처럼 먼저 주찬양의 얼굴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런 습관은 결국 주찬양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이어졌지만 이해영은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기로 다짐합니다.
시간이 흘러 중학교 졸업식 날이 다가왔습니다. 이해영은 복도에서 마주친 주찬양에게 졸업 축하한다는 한 마디를 건넬까 고민합니다. 결국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주찬양은 친구들과 함께 그 자리를 떠납니다. 이해영은 멀어지는 주찬양의 뒷모습을 계속해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된 두 사람. 이해영은 다시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안녕. 오랜만이야. 용기 낸 덕분에 두 사람은 이후로도 제법 가깝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2학년엔 결국 같은 반이 되기까지.
그러나 이해영은 먼저 말 거는 것 이상의 용기를 낼 순 없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거야,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마음일 거야. 겨우 열여덟이 생각하는 사랑은 시간에 의지해 포기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찬양은 전부 알고 있었습니다. 항상 나를 찾던 이해영의 얼굴을. 눈이라도 마주치면 항상 먼저 피해 버렸지만 붉어진 귀가 내 눈엔 다 보인다는 걸....
나를 좋아하는구나. 처음엔 그게 전부였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졸업식, 나를 보며 입을 벙긋거리던 이해영. 고등학교에서 또 한 번 마주했을 땐 망설이지 않고 인사를 건넨 이해영. 내 앞에서 항상 웃고 있던 이해영. 어떤 모습으로든 결국에 주찬양의 옆에 존재하던 이해영의 이름. 주찬양의 세계 속 어느 곳을 바라보아도 이해영이 존재합니다. 소년의 인생 속 절반이 훌쩍 넘는 시간을 함께해 온 소녀가. 주찬양은 사랑에 대해 생각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들을 떠올리고, 암묵적으로 그어 둔 관계의 정의 앞에서 이해영을 떠올립니다.
삼 년이 아주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이해영은 꿈을 찾았고, 주찬양은 꿈을 향했습니다. 졸업 축하해, 주찬양! 고민했던 말이 돌고 돌아 결국 주찬양에게로 닿습니다. 꽃다발을 들고 여전히 밝게 웃는 이해영을 보며 생각합니다. 주찬양에게 사랑은 여전히 미지의 순간 속에 있지만, 적어도 주찬양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밤낮을 구분하지 않는 것. 눈을 뜬 순간부터 신경의 한켠에 자리하다자기 전 침대에 누웠을 때부터 커다래져 가는 것. 심장이 뛰는 것.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두 사람은 이제 다른 길을 걷게 될 테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결국 같은 곳을 향하게 되었으니.......